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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먹는 FT 공부

회의가 막히고 있다면 Groan Zone? - 의사결정 다이아몬드

by iucenter 2026. 9. 14.

회의가 막히는 그 순간, 퍼실리테이터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8초짜리 침묵이 쌓인 자리

어느 중학교 교무회의에서 학교폭력 예방 프로그램을 전면 개편한다고 하자. 초안을 공유한 직후, 참석한 열두 명의 교사가 각자 한두 마디씩 의견을 낸다. 처음 10분은 활발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말이 겹치기 시작한다. 생활부장은 "실효성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상담 교사는 "관계 회복이 먼저"라고 하고, 3학년 담임은 "수업 시수가 부족하다"고 한다. 세 사람은 서로를 반박한 게 아니며, 각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퍼실리테이터의 입장에서 "좋은 의견들이 나오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계속 진행을 해야할까? 정말 좋은 의견들이었을까? 서로의 언어가 맞닿지 않는 상태다. 생활부장이 말하는 '실효성'과 상담 교사가 말하는 '관계 회복'은 같은 지점을 바라보지 않고 있다. 그걸 모르고 다음 단계로 밀어붙이면 어떻게 될까. 결국 교감쌤이 정리해주는 방식으로 끝나고, 교사들은 결정에 참여했다는 느낌 없이 회의를 마칠 것이다.

잠시 멈추고 물어 본다. "지금 나온 이야기들 중에서 서로 연결이 안 되는 것 같다고 느끼는 분 있으신가요?"  몇 초의 침묵이 흐를 것이고 한 교사 쌤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저도 그게 좀 답답했어요. 우리가 지금 뭘 먼저 정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거든요."

그제야 회의의 물꼬를 트며 움직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의사결정 다이아몬드

왜 그 순간 회의가 막혔는가

그 침묵은 무기력이 아니었다. 서로 다른 '참조 틀(frame of reference)'이 충돌하는 신호였다.

생활부장에게 이 안건은 '프로그램의 설계 효율' 문제였다. 상담 교사에게는 '학생 심리 지원의 순서' 문제였다. 3학년 담임에게는 '교육과정 운영의 현실' 문제였다. 세 사람은 같은 단어를 쓰면서 다른 맥락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 상태에서 수렴을 시도하면 충돌한다. 더 흔하게는, 표면적으로 동의하고 내부적으로 불복하는 방식으로 끝난다.

이런 상황이 왜 발생하는지는 Sam Kaner와 동료들은 1996년 『Facilitator's Guide to Participatory Decision-Making』(New Society Publishers; 이후 Jossey-Bass 2판·3판)에서 집단이 복잡한 문제를 다룰 때 거치는 단계를 '의사결정 다이아몬드(Diamond of Participation)'로 제안한다. 모델은 네 구간으로 이루어진다. 다양한 의견이 펼쳐지는 발산 존, 의견들이 서로 충돌하며 혼란이 커지는 전환 구간, 공통의 언어가 생기면서 좁혀지는 수렴 존, 그리고 최종 결정이 완성되는 종결 존.

그중 이 저작이 가장 강조하는 구간이 있다. 발산과 수렴 사이의 전환 지점, 저자들이 'Groan Zone'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핵심 개념: Groan Zone

Groan Zone은 번역하기 어렵다. '끙끙거리는/으르렁거리는/신음하는 구간'쯤 된다. 회의에서 이 구간은 보통 이런 모습으로 나타난다. 말이 많아졌다가 갑자기 줄어든다.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한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이 "그건 제 말과 다르지 않은데요"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다른 이야기다. 진행자 입장에서는 '여기서 어떻게 넘어가야 하지'가 막막해지는 순간이다.

Kaner 등이 제안하는 핵심은 이것이다. 이 혼란은 결함이 아니다. 그룹이 각자의 참조 틀 차이를 처음으로 마주하는 지점이다. 이 구간을 건너뛰면 이후의 합의는 표면적인 것에 그친다. 반면 이 구간을 통과한 그룹은 단순 다수결을 넘어, 실행 단계에서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움직이는 '지속 가능한 합의(Sustainable Agreement)'에 이를 수 있다고 저자들은 정리한다.

현장에서 이 개념이 특히 유효한 이유가 있다. 교무회의 결정은 교감쌤이 공표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실제로 각 교실과 상담실과 생활지도 공간에서 교사들이 움직여야 실행된다. 그 움직임은 결정 과정에서 충분히 이해하고 납득했을 때만 온전히 일어난다. Groan Zone을 생략한 합의는 교무회의실 밖에서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Groan Zone - https://slidemodel.com/templates/groan-zone-powerpoint-template/

 

회의 전 vs 회의 중: 퍼실리테이터의 다른 선택

같은 상황에서 과거에 했던 선택과, 지금 하는 선택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보인다.

  • 과거의 선택 — Groan Zone을 모르던 시절에는 이렇게 했다.

    의견이 혼재되는 순간, 빠르게 정리했다. "지금까지 나온 의견을 세 가지로 묶으면..."이라고 말하며 보드에 항목을 썼다. 참가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의는 30분 안에 끝났다. 그런데 회의 후 복도에서 생활부장과 상담 교사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합의가 된 줄 알았는데, 각자 자기 언어로 해석하고 나간 것이었다.

  • 지금의 선택 — Groan Zone을 인식한 이후로는 이렇게 한다.

    말이 엇갈리기 시작하는 순간을 신호로 읽는다. 그리고 멈춘다. 정리하는 대신, 차이를 수면 위로 올린다.
    "지금 각자 말씀하시는 게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어디서 차이가 나는지 같이 확인해볼까요?"
    또는, 참조 틀이 충돌하는 지점을 명시적으로 짚는다.
    "생활부장님이 말씀하시는 '효과'와 상담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효과'가 같은 의미인지 먼저 확인하면 어떨까요?"
    이 두 문장은 회의를 늦춘다. 때로는 참가자들이 불편해한다. 그 불편함이 Groan Zone에 들어간 신호다.

 

실제 회의에서 쓸 수 있는 절차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순서를 구체적으로 적어 보자. 

  • 1단계 — 회의 시작 전, 다이아몬드 구조를 간략히 공유한다.

    화이트보드에 다이아몬드 모양을 하나 그린다. "오늘 회의는 이 모양으로 진행될 겁니다. 처음엔 의견이 넓게 펼쳐지고, 중간에 좀 복잡해지는 구간이 옵니다. 그게 정상입니다. 그 구간을 넘어야 진짜 합의가 나옵니다."
    이 30초짜리 안내가 Groan Zone에서 참가자들이 혼란을 '실패'가 아니라 '과정'으로 읽게 만든다.

  • 2단계 — 발산 구간에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다양성을 최대한 허용한다.

    이 구간에서 퍼실리테이터가 하는 개입은 주로 이것이다.
    "또 다른 관점은요?" / "지금 나온 의견과 다른 생각도 있으신가요?"

  • 3단계 — Groan Zone 신호를 포착한다.

    같은 말이 반복되거나, 말이 갑자기 줄거나, 참가자들이 서로를 보지 않기 시작하면 신호다.
    그 순간 이렇게 말한다.
    "지금 이 지점이 좀 복잡하게 느껴지시죠? 사실 여기가 제일 중요한 구간입니다. 조금 더 천천히 가겠습니다."

  • 4단계 — 참조 틀 차이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

    "지금 나온 의견들 중 서로 연결이 잘 안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어디서 다른지 같이 찾아볼까요?"
    이 질문 이후에는 서두르지 않는다. 침묵이 와도 기다린다.

  • 5단계 — 공통 언어가 형성되기 시작하면 수렴으로 전환한다.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에서 우리가 함께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이 방법이 역효과 나는 경우

Groan Zone 접근이 모든 회의에서 유효한 건 아니다.

첫째, 이미 결정이 내려진 회의에서는 쓰지 않는 게 낫다. 형식적으로 의견을 묻는 자리에서 Groan Zone을 유도하면 참가자들이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 진짜 발산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걸 직감하기 때문이다.

둘째, 시간 압박이 극도로 강한 긴급 안건에서는 적용하기 어렵다. 이 접근은 시간을 더 쓰는 방식이다. 의사결정의 질을 높이는 대신 속도를 포기한다. 긴급 상황에서는 구조화된 빠른 투표나 대표자 위임이 더 적합하다.

셋째, 퍼실리테이터가 결과에 이해관계를 가진 자리에서는 위험하다. Groan Zone을 인위적으로 길게 끌며 특정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이 접근은 퍼실리테이터가 중립 포지션을 유지할 수 있을 때만 신뢰를 얻는다.

넷째, 참가자들 사이의 위계 차이가 극단적인 자리에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교감 또는 교장이 이미 선호를 드러낸 상태에서 Groan Zone을 열려고 하면, 하위 교사들이 참조 틀의 차이를 솔직하게 내놓지 못한다. 이 경우에는 심리적 안전감을 먼저 확보하는 별도 개입이 선행되어야 한다.


출처: Sam Kaner, Lenny Lind, Catherine Toldi, Sarah Fisk, Duane Berger의 Facilitator's Guide to Participatory Decision-Making(New Society Publishers, 1996; Jossey-Bass 2판 2007, 3판 2014)은 저자들의 장기 실무 경험과 집단 역학 이론을 통합한 실무서로, 의사결정 다이아몬드와 Groan Zone 개념의 출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