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실리테이터로 현장에서 팀 활동을 진행하다 보면 늘 마주치는 질문이 있습니다.
"왜 첫 시간엔 다들 조용하다가, 둘째 시간부터 갑자기 부딪히기 시작할까요?"
"잘 나가던 팀이 왜 갑자기 삐걱거리죠?"
이 물음에 답을 준 이론이 바로 브루스 터크먼(Bruce Tuckman)이 1965년에 제안한 그룹 개발 5단계 모델입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팀 빌딩, 워크숍 설계, 프로젝트 진행 현장에서 여전히 유효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모델을 단순히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퍼실리테이션 현장에서 각 단계마다 무엇을 관찰하고 어떻게 개입해야 하는지까지 정리해보려 합니다.
1단계. 형성기 (Forming) - 서로를 탐색하는 시기
팀이 처음 구성되는 단계입니다. 구성원들은 예의 바르고 조심스러우며, 갈등을 최대한 피하려 합니다. 겉으로는 평화롭지만 속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오갑니다.
- 나는 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해도 괜찮을까?
- 이 활동의 목적과 규칙은 무엇일까?
현장 관찰 포인트: 침묵이 많고, 리더나 퍼실리테이터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서로 탐색만 할 뿐 진짜 의견 충돌은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개입: 이 시기엔 명확한 목표 제시와 아이스브레이킹이 핵심입니다. 그라운드룰을 함께 정하고, 서로를 알아가는 가벼운 활동(하브루타식 짝 인터뷰, 서클 프로세스의 체크인 등)으로 심리적 안전감을 먼저 확보해야 합니다.
2단계. 격동기 (Storming) -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시기
가장 많은 팀이 좌초하는 단계입니다. 서로의 의견 차이, 역할 갈등, 리더십에 대한 도전이 표면화됩니다. "왜 저 사람 마음대로 정하지?", "이 방식이 맞나?" 같은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현장 관찰 포인트: 목소리 큰 사람과 침묵하는 사람이 갈리고, 하위 그룹이 생기기도 합니다. 활동에 대한 저항이나 냉소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개입: 이 단계를 피하려 하지 말고 건설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이 관건입니다. NVC(비폭력대화)의 관찰-느낌-욕구-요청 구조를 빌려 갈등을 감정싸움이 아닌 욕구의 차이로 재구성해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 시기의 갈등을 억누르면 팀은 표면적 평화 속에 정체됩니다.
3단계. 규범기 (Norming) - 팀의 방식이 자리 잡는 시기
격동기를 통과한 팀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협력 방식에 합의하기 시작합니다. 역할이 분명해지고, 공동의 규범과 작업 방식이 자리 잡습니다.
현장 관찰 포인트: 유머와 신뢰가 다시 생겨나고, 서로의 강점을 알아가며 역할을 자연스럽게 나눕니다. "우리 팀은 이렇게 한다"는 공유된 정체성이 생깁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개입: 이 시기엔 뒤로 물러나 팀이 스스로 굴러가도록 지지하는 역할이 필요합니다. 디자인씽킹의 협업 툴(어피니티 다이어그램, 역할 분담 보드)로 팀의 작업 방식을 시각화하고 정착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4단계. 성취기 (Performing) - 높은 성과가 나오는 시기
팀이 성숙하여 최소한의 감독만으로도 목표를 향해 효율적으로 움직입니다. 의사결정이 빠르고, 갈등이 생겨도 팀 스스로 건강하게 다룰 수 있습니다.
현장 관찰 포인트: 구성원들이 서로의 역할을 넘나들며 유연하게 협력합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개입이 거의 필요 없어지는 단계입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개입: 최소 개입 원칙을 지키되, 성과에 매몰되어 성찰을 건너뛰지 않도록 중간중간 회고(리플렉션) 지점을 마련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5단계. 해산기 (Adjourning) - 마무리하고 흩어지는 시기
터크먼이 1977년에 추가한 다섯 번째 단계입니다. 프로젝트나 워크숍이 끝나고 팀이 해체되는 시기로, "성숙기"로도 번역됩니다. 구성원들은 성취감과 동시에 상실감, 아쉬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퍼실리테이터의 개입: 이 단계를 건너뛰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짧더라도 의미 있는 마무리 의식(체크아웃 서클, 감사 표현 라운드, 배운 점 나누기)을 넣어주면 팀 경험이 온전히 완결됩니다. 학습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이 단계에서 가장 깊은 성찰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참고: 웨스트체스터 대학교(WCU) CORAL의 단계별 특징 정리
앞서 다룬 5단계를 좀 더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싶다면, 미국 웨스트체스터 대학교(West Chester University)의 CORAL(Collaborative On-Line Research and Learning) 프로그램에서 정리한 표가 참고할 만합니다. 각 단계를 관찰 가능한 행동, 감정과 생각, 팀에 필요한 것, 필요한 리더십 네 가지 축으로 나눠 정리한 자료입니다.
| 관찰 가능한 행동 (Observable Behaviors) |
감정과 생각 (Feelings & Thoughts) |
팀에 필요한 것 (Team Needs) |
필요한 리더십 (Leadership Required) |
|
| 형성기 Forming |
· 예의 바른 태도 · 조심스러운 참여 · 개인적으로 서로를 알아가려는 시도 · 논쟁 회피 · 소그룹(파벌) 형성 가능성 · 안전과 인정에 대한 욕구 · 과제·절차·의사결정 방식을 정의하려는 시도 · 과제와 무관한 이야기 | · 설렘·낙관·기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심·두려움·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음 ·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 "이 사람들은 왜 여기 있지?" · 전반적인 불확실함과 긴장 | · 팀의 미션과 비전 ·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 설정 · 역할과 책임 규정 · 그라운드룰 수립 · 팀원 간 기대치 공유 · 운영 지침 마련 · 효과적인 회의 진행 · 리더의 첫 피드백 | · 구조와 과제 방향 제시 · 서로 알아갈 시간 허용 · 자신감과 낙관적 분위기 조성 · 적극적인 개입(이 시기 팀원들은 리더가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고 믿는 경향) · 리더에서 팀원으로의 일방향 소통 |
| 격동기 Storming |
· 팀원 간 논쟁 · 리더십을 둘러싼 경쟁 · 관점과 개인 스타일 차이가 뚜렷해짐 · 역할 불명확 · 팀이 스스로를 조직화하려는 시도 · 권력 다툼과 충돌 · 합의를 이루려는 행동의 부족 · 진전 없음 · 비현실적인 목표 설정 · 과도한 업무량에 대한 불만 | · 방어적인 태도 · 혼란과 흥미 상실 · 과제에 대한 저항 · 팀에 대한 태도의 기복 · "이 팀의 목적에 정말 동의하는지 모르겠다" · 다른 팀원의 판단력에 대한 의문 · 긴장과 질투의 증가 · 자신의 영향력과 자유에 대한 불확실함 · "우리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다" | · 대인관계와 자기 이해 · 스타일과 개성 차이 파악 · 효과적인 경청 ·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 · 갈등 해결 · 팀의 목적 재확인 · 역할과 그라운드룰 재정립 · 규범을 어기는 팀원을 다루는 방법 · 리더의 피드백 | · 갈등의 존재를 인정하기 · 팀원 간 합의를 유도하기 · 과제에 대한 책임을 팀원들이 나눠 갖도록 하기 · 공유 리더십 개념의 등장 · 갈등 해결 기법 코칭 · 지지와 격려 표현 · 팀원들이 서로 상의하기 시작(공유 리더십이 싹트지만 의사결정은 여전히 어려운 단계) |
| 규범기 Norming |
· 절차와 프로세스에 대한 합의 · 관계에 대한 편안함 · 과제에 집중된 에너지 · 효과적인 갈등 해결 능력 · 합의 지향적인 의사결정 시도 · 균형 잡힌 영향력과 공동 문제 해결 · 팀만의 루틴 형성 · 과제 마일스톤 달성 | · 팀에 대한 소속감 · 높은 자신감 · 비판을 건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됨 · 모든 구성원에 대한 수용 · 전반적인 신뢰감 · "잘 될 것"이라는 확신 · 자유롭게 표현하고 기여할 수 있다는 느낌 | · 의사결정 프로세스 개발 · 아이디어와 제안을 준비하는 태도 · 문제 해결을 함께 나누기 · 가용 자원의 적극적 활용 · 공유 리더십 역할에 대한 책임감 · 리더의 피드백 | · 공유 리더십 실행 · 지지와 피드백 제공 · 구조를 점차 줄여도 됨 · 팀 상호작용 촉진 · 모든 팀원의 기여를 요청하기 · 협업 방식이 명확해지도록 돕기 · 의사결정 참여 독려 · 신뢰 관계를 지속적으로 구축 |
| 성취기 Performing |
· 완전히 기능하는 팀 · 명확해진 역할 · 팀의 자립성 발달 · 스스로 조직화가 가능해짐 · 개인·소그룹·전체 단위 어디서든 유연하게 기능 · 서로의 강점·약점과 팀 프로세스에 대한 깊은 이해 | · 서로에 대한 공감 · 높은 헌신도 · 협업 방식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음 · 끈끈한 유대감 · 재미와 활력 · 개인적 성장과 창의성 · 전반적인 만족감 · 몰입과 동기를 지속하는 방법을 계속 발견해감 | · 팀이 협업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확인 · 유연성 유지 · 성과(지식) 측정 · 정보 제공 · 리더와의 피드백과 대화 | · 공유 리더십의 실질적 실행 · 관찰·질문·팀의 필요 충족 · 팀원 간 협업 촉진 · 리더의 최소한의 개입 · 긍정적 강화와 지지 표현 · 새로운 정보 공유 |
| 해산기 Adjourning |
· 눈에 띄는 아쉬움·상실감의 표현 · 추진력 둔화 · 산만한 행동 · 짧은 에너지 폭발 후 찾아오는 무기력 | · 슬픔 · (외부에서 보면 다소 냉소적으로 비칠 수 있는) 유머 · 끝나서 홀가분한 안도감 | · 팀의 노력에 대한 평가 · 미완의 과제 마무리 · 팀의 노력을 인정하고 보상하기 | · 팀이 마무리 방법을 스스로 찾도록 돕기 · 잘 들어주기 · 성찰을 다음 기회로 이어가는 것을 돕기 |
(출처: West Chester University, "Collaborative On-Line Research and Learning(CORAL): Tuckman's Stages of Group Development", 한글 번역·재구성)
현장에서 기억할 것
터크먼 모델에서 가장 오해하기 쉬운 지점은 이 단계들이 한 번만, 순서대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 팀 구성이 바뀌거나 새로운 과제가 주어지면 형성기·격동기로 되돌아가기도 합니다.
- 짧은 워크숍(하루짜리 활동)에서도 이 사이클이 축소된 형태로 빠르게 반복됩니다.
- 격동기를 "문제"로 보고 억누르려는 순간, 팀은 진짜 협력 단계로 넘어가지 못합니다.
퍼실리테이터의 역할은 이 단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각 단계에 맞는 개입의 강도와 방식을 조절하는 것입니다. 형성기엔 구조를, 격동기엔 안전한 갈등 공간을, 규범기와 성취기엔 신뢰를, 해산기엔 의미 있는 마무리를 제공하는 것 — 이것이 터크먼 모델을 실무에 적용하는 핵심입니다.
이 글에서 참고한 주요 문헌: Tuckman(1965)의 "Developmental Sequence in Small Groups"(Psychological Bulletin)은 50편의 소집단 연구를 귀납적으로 검토하여 Forming–Storming–Norming–Performing 4단계 발달 모델을 제안한 이론 통합 논문이다. 이 논문은 독자적 실험 데이터를 포함하지 않으며, 광범위한 피인용 횟수가 경험적 타당성의 증거로 오해되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Adjourning(해산) 5단계는 Tuckman과 Jensen이 1977년에 발표한 후속 논문에서 추가된 것.
이론을 회기 설계로 옮기기 : 터크먼 모델로 8회기 SEL 프로그램
이 이론을 실제로 어떻게 회기 설계에 반영했는지, 경산시 동네배움터에서 진행했던 8회기 그림책 기반 사회정서학습(SEL) 프로그램 사례로 구체화해보려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CASEL(사회정서학습 협력체)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회기마다 하나의 주제를 그림책과 연결해 다루는 구조였습니다.
1회기 핵심가치 → 2회기 사회적 가치 → 3회기 회복탄력성 → 4회기 용기 → 5회기 낙관성 → 6회기 정서 → 7회기 관계 → 8회기 성취
주제만 보면 각 회기가 독립적인 콘텐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참가자들의 팀 역동은 이 8회기 동안 형성기부터 해산기까지 하나의 곡선을 그리며 흘러갑니다. 주제 설계와 팀 발달 단계를 겹쳐놓고 보면, 왜 특정 회기에서 유독 아이들이 산만해지고 특정 회기부터 갑자기 몰입도가 올라가는지가 보입니다.
전체 구조 한눈에 보기
| 주제 | 터크먼 단계 | 핵심 리더십 과제 | |
| 1회기 | 핵심가치 | 형성기 | 안전한 분위기 조성, 그라운드룰 합의 |
| 2회기 | 사회적 가치 | 형성기 → 격동기 진입 | 개인 의견 차이를 자연스럽게 드러낼 장치 마련 |
| 3회기 | 회복탄력성 | 격동기 | 갈등과 좌절을 다루는 언어 제공 |
| 4회기 | 용기 | 격동기 → 규범기 전환 | 목소리 내기를 격려, 소외되는 아이 없게 개입 |
| 5회기 | 낙관성 | 규범기 | 팀 루틴 정착, 리더 개입 최소화 시작 |
| 6회기 | 정서 | 규범기 → 성취기 전환 | 정서 표현의 안전판 강화, 상호 피드백 유도 |
| 7회기 | 관계 | 성취기 | 관찰자 역할로 전환, 아이들 스스로 진행하게 허용 |
| 8회기 | 성취 | 해산기 | 의미 있는 마무리 의식, 성찰과 축하 |
이제 각 구간을 회기별로 풀어보겠습니다.
1~2회기: 형성기 - "우리, 뭘 하는 거예요?"
핵심가치를 다루는 1회기는 처음 만난 아이들이 서로를 탐색하는 시간과 정확히 겹칩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는 활동 자체가 "안전하게 참여할 수 있는 낮은 진입장벽"이 되어주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굳이 깊은 자기개방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실제 개입 전략
- 그림책 낭독 후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처럼 정답이 없는 질문으로 시작해 부담을 낮춤
- 발언 순서를 스틱 뽑기 등으로 무작위화해 특정 아이에게 발언이 몰리지 않도록 구조화
- 회기 초반 5분을 "오늘 나의 상태 체크인"으로 고정해 그라운드룰처럼 반복
2회기 사회적 가치로 넘어가면서부터 아이들 사이에 미묘한 의견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그건 아니지 않아요?" 같은 반박이 처음 나오는 시점이 대체로 이 회기였습니다. 이는 격동기 진입의 초기 신호이기 때문에, 퍼실리테이터로서는 이 반박을 억누르기보다 구조화된 토론 형식(짝 토론 후 전체 공유)으로 담아내는 것이 효과적이었습니다.
3~4회기: 격동기 - 갈등이 표면화되는 시기
회복탄력성을 다루는 3회기는 흥미롭게도 프로그램 자체가 "실패와 좌절"을 주제로 다루는 동시에, 팀 내에서도 실제로 갈등이 두드러지는 시점이었습니다. 아이들 사이에 목소리 큰 아이와 위축되는 아이의 구도가 뚜렷해지고, 활동에 대한 저항("이거 왜 해요?")도 이 시기에 가장 많이 나왔습니다.
실제 개입 전략
- 그림책 속 인물의 실패 경험을 아이들 자신의 경험과 연결하는 질문으로 전환해, 갈등을 "인물 이야기"라는 안전한 거리를 두고 다루게 함
- 목소리 큰 아이에게는 "다른 친구는 어떻게 생각할까?" 라는 역할을 부여해 자연스럽게 발언권을 분산
- 회복탄력성 주제 자체를 팀 갈등에 대한 메타 코멘트로 활용: "지금 우리 팀도 살짝 삐걱거리고 있죠? 그것도 자연스러운 거예요."
4회기 용기 주제는 격동기를 통과시키는 결정적 지렛대 역할을 했습니다. "용기 내어 말하기"라는 주제 자체가 그동안 위축되어 있던 아이들에게 발언의 명분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회기부터 조용했던 아이들의 발언 빈도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5~6회기: 규범기 - 팀의 리듬이 자리 잡는 시기
낙관성을 다루는 5회기에 이르면 팀 분위기가 눈에 띄게 안정됩니다. 아이들이 서로의 발언에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퍼실리테이터가 매번 순서를 지정하지 않아도 대화가 이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실제 개입 전략
- 이 시기부터 퍼실리테이터의 발언 비중을 의도적으로 줄이고, 아이들끼리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시간을 늘림
- "지난 회기에 ○○이가 한 말이 기억나는데" 같은 회기 간 연결 발언을 활용해 팀의 공동 역사(shared history)를 강화
6회기 정서는 감정을 언어화하는 회기인 만큼, 규범기에서 성취기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이 시점부터 자신의 감정뿐 아니라 다른 친구의 감정 상태에 대한 피드백("너 오늘 표정이 안 좋아 보여")을 자발적으로 주고받기 시작했는데, 이는 규범기의 특징(건설적 비판이 가능해짐)이 실제로 관찰된 지점이었습니다.
7회기: 성취기 - 리더가 뒤로 물러나는 시기
관계를 주제로 한 7회기는 프로그램 전체에서 퍼실리테이터의 개입이 가장 적었던 회기였습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흐름 자체를 아이들이 주도했고, 갈등이 생겨도 서로 조율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실제 개입 전략
- 진행자는 시간 관리와 안전 확보 역할로만 남고, 토론 방향은 아이들에게 위임
- 중간중간 "잠깐, 우리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메타 질문만 던져 스스로 궤도를 점검하게 함
이 단계에서 지나치게 개입하면 오히려 아이들의 자율성과 성취감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을 현장에서 다시 확인했습니다.
8회기: 해산기 - 마무리를 설계하는 시기
성취를 주제로 한 마지막 8회기는 콘텐츠상으로도, 팀 발달 단계상으로도 정확히 해산기와 맞아떨어졌습니다. 8회기 동안의 성장을 돌아보는 것이 곧 프로그램의 주제이자 팀 종료 의식이 되는 구조였습니다.
실제 개입 전략
- 체크아웃 서클 형식으로 각자 8회기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한 마디씩 나누는 시간 배치
- 그림책 주인공에게 편지 쓰기 활동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로 자연스럽게 전환
-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동시에 표현되는 것(WCU 표에서 언급한 "슬픔"과 "안도감"의 공존)을 특이하게 여기지 않고 정상적인 반응으로 안내
설계자에게 남는 교훈
이 사례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통찰은, 주제 설계와 팀 발달 단계를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겹쳐 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회복탄력성"이나 "용기" 같은 갈등 관련 주제를 형성기(1~2회기)에 배치했다면 아이들은 아직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상태에서 자기개방을 강요받았을 것이고, 반대로 "성취"를 3회기쯤에 배치했다면 축하할 만한 공동의 서사가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였을 것입니다.
즉, 8회기라는 짧은 프로그램 안에서도 형성기-격동기-규범기-성취기-해산기의 곡선은 축소된 형태로 반드시 일어나며, 콘텐츠 주제 순서를 이 곡선에 맞춰 배치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퍼실리테이션 설계 기법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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