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가 없어도 팀이 스스로 굴러가기 시작하는 순간이 있다. 터크먼 성취기(Performing) 단계의 특징과 WCU CORAL 지표, 그리고 진행자가 뒤로 물러나야 할 때를 다루는 민주적 결정방법론의 개입 기법을 정리한다.
리더가 없어도 회의가 굴러갔다 - 터크먼의 성취기
리더 없이 진행된 회의
제조기업 신사업 태스크포스(TF)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 보자. 여섯 명의 TF 팀원은 격동기의 충돌을 지나 규범기에 들어서며 스스로 회의록을 작성하고, 이전 합의를 기준 삼아 논의하는 팀으로 자리 잡았다. 그로부터 몇 주 뒤, 열두 번째 회의를 앞두고 리더가 급한 외부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하게 된다.
리더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팀 채팅방에 메시지를 남긴다. "오늘 회의는 다음 주로 미루는 게 나을까요?" 돌아온 답은 뜻밖이다. 품질팀 담당자가 먼저 답한다. "아니요, 저희끼리 진행하겠습니다. 지난번에 남겨둔 주차장 이슈들부터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다음 날 리더에게 공유된 회의록에는 결정 사항과 담당자, 다음 액션까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심지어 회의 중 새로운 문제 하나를 발견해, 원래 안건에는 없던 대응 방안까지 스스로 마련해놓은 상태였다.
리더는 회의록을 읽으며 묘한 감정을 느낀다. 안도감과 동시에, 자신의 역할이 이제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오는 낯섦이다. 이는 팀이 리더를 배제한 것이 아니라, 터크먼(Tuckman) 모델의 네 번째 단계인 성취기(Performing)에 들어섰다는 신호다.

리더 없이도 팀이 굴러간다는 것의 의미
성취기는 팀이 최소한의 감독만으로도 목표를 향해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단계다. 이 단계에 이른 팀은 의사결정이 빠르고, 갈등이 생겨도 팀 스스로 건강하게 다룰 수 있다. 위 사례에서 팀원들이 리더 없이도 회의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고, 예정에 없던 문제까지 스스로 발견해 대응한 것은 성취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팀원 개개인의 역량이 갑자기 향상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다. 형성기의 탐색, 격동기의 충돌, 규범기의 역할 정착이라는 앞선 과정을 온전히 거쳤기 때문에 가능해진 결과다. 성취기는 앞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도달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성취기의 네 가지 얼굴 — WCU CORAL 지표
웨스트체스터 대학교(West Chester University) CORAL 프로그램의 단계별 지표 가운데 성취기에 해당하는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 구분 | 내용 |
| 관찰 가능한 행동 | 완전히 기능하는 팀 · 명확해진 역할 · 팀의 자립성 발달 · 스스로 조직화가 가능해짐 · 개인·소그룹·전체 단위 어디서든 유연하게 기능 · 서로의 강점·약점과 팀 프로세스에 대한 깊은 이해 |
| 감정과 생각 | 서로에 대한 공감 · 높은 헌신도 · 협업 방식에 대한 이해가 자리 잡음 · 끈끈한 유대감 · 재미와 활력 · 개인적 성장과 창의성 · 전반적인 만족감 · 몰입과 동기를 지속하는 방법을 계속 발견해감 |
| 팀에 필요한 것 | 팀이 협업 방향으로 잘 가고 있는지 확인 · 유연성 유지 · 성과(지식) 측정 · 정보 제공 · 리더와의 피드백과 대화 |
| 필요한 리더십 | 공유 리더십의 실질적 실행 · 관찰·질문·팀의 필요 충족 · 팀원 간 협업 촉진 · 리더의 최소한의 개입 · 긍정적 강화와 지지 표현 · 새로운 정보 공유 |
위 사례에서 팀이 리더 없이도 회의를 진행하고 새로운 문제를 스스로 발견한 것은 표 상단의 "팀의 자립성 발달"과 "스스로 조직화가 가능해짐"에 정확히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 리더의 역할은 표 하단에 나온 대로 "최소한의 개입"으로 좁혀진다. 이는 방치가 아니라, 팀이 스스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공간을 내어주는 의도적인 선택이다.
리더가 계속 필요를 확인하려는 것과 신뢰하고 물러서는 것의 차이
성취기에 들어선 팀 앞에서 리더가 택할 수 있는 접근은 갈린다.
- 계속 확인하려는 접근
팀이 스스로 잘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리더는 "혹시 제가 없어서 놓친 부분은 없나요", "이 결정 제가 다시 한 번 검토할까요"라며 개입을 이어간다. 팀 입장에서는 신뢰받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고, 스스로 쌓아온 자립성이 다시 위축될 수 있다. - 신뢰하고 물러서는 접근
팀의 결정과 진행 방식을 존중하며, 리더는 성과를 점검하는 질문이나 정보 제공으로 역할을 좁힌다. "이번에 새로 발견한 문제, 어떻게 대응하기로 하셨는지 궁금하네요"처럼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관여하되, 결정 자체는 팀에 맡긴다. 이 접근은 리더에게도 낯설고 불편할 수 있지만, 팀의 자립성을 지속시키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다.
참고할 만한 개입 기법 — 민주적 결정방법론의 난제 대응
Kaner 등의 『Facilitator's Guide to Participatory Decision-Making』에도 이 단계와 맞닿은 항목이 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이 정리한 항목 중 상당수는 회의가 아직 미숙한 단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인데, 성취기에는 오히려 진행자 자신의 태도를 다루는 항목이 더 유효하다.
| 난제 | 흔한 실수 | 효과적인 대응 |
| 그룹이 퍼실리테이터의 도움 없이 진행하려 할 때 | 퍼실리테이터를 활용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주장하거나, 이 일은 자신이 할 일이라고 고집한다 | 퍼실리테이터를 요청할지는 회의 계획자의 몫임을 인정하고, 회의 후 평가나 디브리핑 시간을 별도로 제안하는 정도로 관여를 좁힌다 |
| 이전에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완전히 새로운 이슈를 누군가 발견했을 때 | 논란이 될 만한 이슈를 꺼내는 것이 사람들을 좌절시킬 뿐이라며 외면하거나 못 들은 척한다 | 외면하고 싶은 충동을 넘어, 이것이 상황을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볼 기회일 수 있다는 점을 받아들인다 |
두 항목 모두 공통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성취기의 팀 앞에서 진행자가 가장 자주 저지르는 실수는 지나치게 개입하려는 습관을 내려놓지 못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실무에서 쓸 수 있는 절차
TF나 프로젝트팀이 성취기에 들어섰을 때 리더가 적용할 수 있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 1단계 — 리더의 부재를 의도적으로 시험해본다.
한두 차례 회의를 팀에 완전히 맡겨보고, 팀이 스스로 운영할 수 있는 범위를 확인한다. - 2단계 — 개입 대신 질문으로 관여한다.
결정을 검토하거나 수정하는 대신, "그렇게 결정한 이유가 궁금하다"는 식의 호기심 어린 질문으로 관여를 최소화한다. - 3단계 — 성과를 팀과 함께 측정한다.
잘 굴러가고 있다는 인상만으로 넘어가지 않고, 정기적으로 "지금까지 성과가 어떤지" 팀과 함께 점검하는 자리를 갖는다. - 4단계 — 몰입이 유지되는지 살핀다.
성취기의 팀도 시간이 지나면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재미와 활력이 유지되고 있는지 가끔 확인하고, 필요하면 새로운 자극(정보 공유, 역할 순환 등)을 제공한다. - 5단계 — 새로운 발견을 반갑게 받아들인다.
팀이 스스로 새로운 문제나 기회를 찾아냈을 때, 이를 기존 계획을 흔드는 방해 요소로 보지 않고 팀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이 접근이 역효과 나는 경우
리더가 신뢰하고 물러서는 접근이 모든 상황에 맞는 것은 아니다.
첫째, 팀 외부의 이해관계자(상급 경영진, 타 부서)가 여전히 리더를 통해서만 소통하려는 조직 문화라면, 리더의 부재가 팀 외부와의 연결을 끊어버릴 수 있다. 이 경우 리더는 팀 내부 운영에서는 물러서되, 외부와의 연결 창구 역할은 유지해야 한다.
둘째, 성취기에 도달한 것처럼 보여도 특정 소수가 실질적으로 팀을 이끌고 나머지는 따라가는 구조일 수 있다. 리더가 완전히 물러서기 전에, 결정 과정이 실제로 공유되고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셋째, 팀 구성원 교체나 새로운 과제 부여처럼 조건이 바뀌면 성취기는 유지되지 않는다. 이 경우 팀은 형성기나 격동기로 되돌아갈 수 있으며, 리더는 다시 더 적극적인 역할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이 글에서 참고한 문헌: Tuckman(1965), "Developmental Sequence in Small Groups", Psychological Bulletin — Forming–Storming–Norming–Performing 4단계 모델의 원 출처. West Chester University, "Collaborative On-Line Research and Learning(CORAL): Tuckman's Stages of Group Development" — 단계별 관찰지표 표의 출처. Sam Kaner, Lenny Lind, Catherine Toldi, Sarah Fisk, Duane Berger, 『Facilitator's Guide to Participatory Decision-Making』(New Society Publishers, 1996; Jossey-Bass 2판 2007, 3판 2014) — 진행자의 개입 수위 관련 난제 대응표의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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