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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먹는 FT 공부

터크먼의 형성기 - 침묵을 다루는 법

by iucenter 2026. 9. 21.

새로 꾸려진 팀이 유독 조용한 이유는 나태함이 아니라 형성기의 신호다. 터크먼 형성기(Forming) 단계의 특징과 WCU CORAL 지표, 그리고 침묵·참여불균형을 다루는 민주적 결정방법론의 개입 기법을 정리한다.

첫 회의가 유독 조용한 이유  - 터크먼의 형성기와 침묵을 다루는 법

카메라를 끈 채 시작된 킥오프

한 중견 제조기업에서 신사업 태스크포스(TF)가 꾸려졌다고 하자. 영업, 생산, 품질, 전산 네 개 부서에서 한두 명씩 차출된 여섯 명이 킥오프 회의에 모인다. 프로젝트 리더는 회의 시작과 동시에 목표와 일정을 담은 슬라이드를 띄운다. 발표가 끝나고 질문을 받는 순간, 회의실은 조용해진다. 화면을 공유한 화상회의라면 카메라는 대부분 꺼져 있고, 대면 회의라면 다들 노트북 화면이나 수첩만 내려다본다.

리더는 "질문 없으시면 다음 주부터 바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회의를 마친다. 겉보기엔 순조로운 출발이다. 그런데 이틀 뒤, 전산팀 담당자가 리더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낸다. "저희 쪽 시스템으로는 그 일정에 맞추기 어려울 것 같은데, 회의 때 말씀드리기가 좀 그래서요." 생산팀 담당자도 비슷한 이야기를 옆자리 동료에게만 흘린다.

리더 입장에서는 "왜 회의 때 말하지 않았을까"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침묵은 무관심이나 태만이 아니다. 서로 처음 만난 사람들이 아직 "여기서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은지" 확신하지 못하는 상태, 즉 팀 발달의 형성기(Forming)에 있다는 신호에 가깝다.

터크먼의 형성기와 침묵을 다루는 법

 

왜 첫 회의는 예의 바르고 조용한가

브루스 터크먼(Bruce Tuckman)이 1965년에 제안한 그룹 개발 5단계 모델에서, 형성기(forming)는 팀이 처음 구성되는 시기를 가리킨다. 구성원들은 서로를 탐색하는 데 에너지를 쓰며, 갈등을 최대한 피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겉으로는 협조적이고 평화롭지만, 속으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오간다.

  • 나는 이 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게 될까?
  •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해도 괜찮을까?
  • 여기서 반대 의견을 내도 괜찮은 자리일까?

위 사례에서 전산팀 담당자가 회의 중에는 침묵하고 나중에 개인적으로만 우려를 전달한 것은, 아직 "이 자리에서 이견을 말해도 안전하다"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형성기의 팀은 리더나 퍼실리테이터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강하고, 진짜 의견 충돌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 조용함을 "합의"로 착각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생긴다.

형성기의 네 가지 얼굴 — WCU CORAL 지표

미국 웨스트체스터 대학교(West Chester University)의 CORAL(Collaborative On-Line Research and Learning) 프로그램은 터크먼의 각 단계를 관찰 가능한 행동, 감정과 생각, 팀에 필요한 것, 필요한 리더십 네 축으로 정리한 자료를 제공한다. 형성기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구분 내용
관찰 가능한 행동 예의 바른 태도 · 조심스러운 참여 · 개인적으로 서로를 알아가려는 시도 · 논쟁 회피 · 소그룹(파벌) 형성 가능성 · 안전과 인정에 대한 욕구 · 과제·절차·의사결정 방식을 정의하려는 시도 · 과제와 무관한 이야기
감정과 생각 설렘·낙관·기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심·두려움·불안을 느끼는 사람도 있음 ·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 "이 사람들은 왜 여기 있지?" · 전반적인 불확실함과 긴장
팀에 필요한 것 팀의 미션과 비전 · 구체적인 목표와 과제 설정 · 역할과 책임 규정 · 그라운드룰 수립 · 팀원 간 기대치 공유 · 운영 지침 마련 · 효과적인 회의 진행 · 리더의 첫 피드백
필요한 리더십 구조와 과제 방향 제시 · 서로 알아갈 시간 허용 · 자신감과 낙관적 분위기 조성 · 적극적인 개입 · 리더에서 팀원으로의 일방향 소통(이 시기 팀원들은 리더가 결정을 내려줘야 한다고 믿는 경향)

위 사례에 대입하면, 리더가 목표와 일정을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질문을 받는 방식은 표 하단의 "리더에서 팀원으로의 일방향 소통"에 정확히 해당한다. 이것이 형성기 자체에서 잘못된 접근은 아니다. 문제는 "질문 없으시면"이라는 말로 침묵을 동의로 처리해버린 지점에 있다.

침묵을 다루는 방법 - 두 가지 접근의 차이

같은 침묵 앞에서 퍼실리테이터가 택할 수 있는 두 가지 접근을 나란히 놓으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 침묵을 동의로 처리하는 접근
    회의 말미에 "질문 없으시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넘어간다. 회의는 예정된 시간 안에 끝나고, 리더는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실행 단계에 들어가면 회의에서 말하지 못했던 우려들이 하나둘 표면화되며, 일정이 밀리거나 담당자 간 조율이 반복된다.

  • 침묵을 신호로 읽는 접근
    질문을 열어두는 대신, 침묵이 나올 것을 미리 전제하고 구조를 바꾼다. "지금 각자 속한 부서 입장에서 이 일정에 걸림돌이 될 만한 게 있는지, 한 분씩 돌아가며 짧게라도 말씀해주시겠어요?"처럼 발언을 구조화하거나, 전체 질문 대신 2인 1조로 짝을 지어 3분간 대화한 뒤 우려사항만 대표로 전달하게 하는 방식을 쓴다. 이 방식은 회의 시간을 조금 늘리지만, 회의 중에 우려가 드러나기 때문에 이후 조율 비용이 줄어든다.

이 차이는 정확히 Kaner 등이 『Facilitator's Guide to Participatory Decision-Making』에서 정리한 참여 관련 난제들과 맞닿아 있다. 이 책은 회의 진행 중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어려움을 항목화해 정리하는데, 그중 형성기 초반의 조용한 팀에 특히 해당하는 항목들이 있다.

난제 흔한 실수 효과적인 대응
전체적으로 참여가 저조할 때 침묵을 동의로 간주하고, 이해했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넘어간다 저조한 참여는 늘 의심의 눈으로 봐야 한다. 표현되지 못한 우려가 자유로운 발언을 막고 있을 수 있으므로, 자유토론 대신 소그룹 대화나 목록 정리 같은 부담이 적은 방식으로 전환한다
다른 사람들은 활발한데 한두 명만 조용할 때 "OO님, 오늘 말이 없으시네요"처럼 특정인을 지목해 발언을 요구한다 발언하지 않은 사람부터 순서대로 짧게 의견을 내도록 구조를 바꾸거나, 소그룹으로 나눠 발언 경쟁의 압박 없이 말할 기회를 준다
구성원들의 침묵이 불편해질 때 진행자가 스스로 말을 채워 넣거나 "누구라도 의견 좀 내보세요"라고 재촉한다 침묵은 생각 중이라는 신호일 수 있다.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에 최소 15초 정도는 기다린 뒤, "새로운 생각이 있을까요?"처럼 열린 질문을 다시 던진다

세 항목 모두 공통된 원칙을 가리킨다. 형성기의 침묵은 억지로 채우거나 압박으로 깨뜨릴 대상이 아니라, 발언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구조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실무에서 쓸 수 있는 절차

아직 조직이 형성되는 시기의 회의에 적용할 수 있는 순서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1단계 — 회의 시작 전, 이 회의가 어떤 성격인지 미리 안내한다.
    "오늘은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입니다"처럼 회의의 목적을 명시하면, 참가자들은 침묵이 곧 평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조금 더 편하게 참여할 수 있다.

  • 2단계 — 전체 질문 대신 구조화된 발언 순서를 만든다.
    "질문 있으신 분?" 대신 "각자 소속 부서 입장에서 우려되는 점을 한 가지씩 말씀해주세요"처럼 발언 대상과 범위를 좁힌다.

  • 3단계 — 소그룹으로 부담을 낮춘다.
    인원이 많거나 위계 차이가 있는 자리라면, 2~3인 소그룹 대화 후 대표 발언으로 전달하는 구조가 개인 발언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 4단계 — 침묵이 나오면 최소 15초는 기다린다.
    침묵을 즉시 채우려는 충동을 참고, 생각할 시간을 그대로 둔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질문의 범위를 좁혀 다시 던진다.

  • 5단계 — 그라운드룰을 회의 말미에 문서로 남긴다.
    "오늘 나온 이야기 중에서 우리 팀이 앞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면요?"라는 질문으로 마무리하면, 형성기에 필요한 그라운드룰이 리더의 지시가 아니라 팀원들의 합의로 만들어진다.


이 접근이 역효과 나는 경우

형성기의 침묵을 구조화된 발언으로 여는 접근이 항상 유효한 것은 아니다.

첫째, 이미 상급자가 결론을 정해놓은 회의에서는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발언을 구조화해 의견을 끌어냈는데 그 의견이 실제 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으면, 다음 회의부터는 침묵이 더 깊어진다. 형식적인 의견 수렴 자리라면 애초에 발언을 유도하지 않는 편이 낫다.

둘째, 조직 내 위계 차이가 뚜렷한 자리에서는 소그룹 구조만으로 안전감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상급자가 먼저 발언하지 않고 가장 나중에 발언하도록 순서를 조정하는 별도 장치가 필요하다.

셋째, TF가 이미 여러 차례 만난 뒤에도 계속 침묵이 반복된다면, 이는 형성기가 아니라 다른 신호일 수 있다. 형성기 특유의 조심스러움은 보통 몇 차례의 회의 안에서 완화된다. 그렇지 않다면 신뢰 부족이나 역할 갈등처럼 격동기의 문제가 억눌린 형태로 잠복해 있을 가능성을 살펴봐야 한다.


이 글에서 참고한 문헌: Tuckman(1965), "Developmental Sequence in Small Groups", Psychological Bulletin — Forming–Storming–Norming–Performing 4단계 모델의 원 출처. West Chester University, "Collaborative On-Line Research and Learning(CORAL): Tuckman's Stages of Group Development" — 단계별 관찰지표 표의 출처. Sam Kaner, Lenny Lind, Catherine Toldi, Sarah Fisk, Duane Berger, 『Facilitator's Guide to Participatory Decision-Making』(New Society Publishers, 1996; Jossey-Bass 2판 2007, 3판 2014) — 참여불균형·침묵 관련 난제 대응표의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