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퍼실리테이션&디자인씽킹

갈등을 키우거나 푸는 말 — 재구성(Reframing)이 하는 일

by iucenter 2026. 7. 27.

협상·갈등 커뮤니케이션의 의미 전환 기법

같은 말이 왜 어떤 자리에선 갈등을 키우고 어떤 자리에선 풀릴까 — 재구성(Reframing)이 하는 일

학교 교무회의를 떠올려 보자. 누군가 "이 문제는 결국 담임이 신경을 안 쓴 거잖아요."라고 말하는 순간, 회의실 공기가 굳는다. 같은 사안을 "담임 선생님들이 감당하는 업무 부담이 너무 큰 건 아닐까요?"로 다시 꺼냈을 때, 대화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직장 팀 회의도 다르지 않다. "이건 마케팅 팀이 초기에 잘못 잡은 방향 때문입니다."와 "이 캠페인에서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 실제 반응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었을까요?" — 두 문장은 같은 실패를 다루지만, 뒤따르는 대화의 질이 완전히 달라진다.

이 차이가 그냥 말투의 문제일까. 아니다. '재구성(Reframing)'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협상·갈등 커뮤니케이션의 의미 전환 기법(Reframing)

프레임은 고정된 게 아니다

Putnam과 Holmer(1992)는 협상 장면에서 프레임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정리하면서, 프레임을 미리 고정된 인지 틀로 보는 시각을 비판한다.(실증 데이터를 수집한 연구가 아니라 문헌 검토형 논문)

저자들이 제안하는 핵심은 이렇다. 프레임은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참여자들이 서로의 언어적 단서에 반응하면서 지속적으로 형성되고 변형되고 해체된다. 즉, 갈등 현장의 의미는 사전에 정해진 것이 아니라 대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이슈의 사회적 구성 과정이다. 협상 의제는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게 아니라, '명명(naming) → 귀책(blaming) → 주장(claiming)'의 순서로 당사자들 사이에서 구성된다고 정리한다. 앞서 교무회의 예시에서 "담임이 신경을 안 쓴 거잖아요."는 이미 '귀책' 단계까지 진행된 이슈 명명이다. 이 단계에서 재구성 없이 대화를 이어가면, 이후 논의는 책임 공방으로 수렴하기 쉽다.

2차 변화 — 해법을 바꾸는 게 아니라 문제를 보는 눈을 바꾸는 것

재구성이 왜 단순한 '긍정적 표현'과 다른지를 이해하려면, Watzlawick et al.(1974)이 구분한 1차 변화와 2차 변화 개념이 도움이 된다. Putnam과 Holmer(1992)는 재구성을 이 2차 변화와 연결지어 설명한다.

  • 1차 변화는 기존 프레임 안에서 해법을 반복 시도하는 것이다.
    "더 강하게 설득하면 된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된다" — 이런 시도들이 여기 해당한다.
  • 2차 변화는 문제를 바라보는 논리 체계 자체를 바꾸는 것이다.
    재구성은 바로 이 2차 변화를 언어와 대화 수준에서 실행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 이 개념은 협상(negotiation) 연구를 모태로 하며, 위계적 조직이나 비영리 현장에 곧바로 일반화하기에는 별도 검토가 필요하다. 구체적 맥락에서의 효과는 해당 조직의 조건에 맞게 따져봐야 한다.

재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

재구성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의미 틀을 바꿔보려는 시도를 실제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심리적 안전감이 재구성의 작동 조건으로 기능한다. 새로운 관점을 꺼냈을 때 '이상한 소리 한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공간에서는, 재구성 시도 자체가 위험 부담이 된다.

그렇다면 퍼실리테이터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Putnam과 Holmer(1992)의 이론은 퍼실리테이터가 왜 '단순한 중립 진행자'에 그쳐서는 안 되는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이슈가 대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된다면, 퍼실리테이터의 언어 선택과 개입 타이밍 자체가 프레임 형성에 개입하는 행위다. 중립처럼 보이는 질문 하나가 이미 특정 프레임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킬 수 있다.

이미 쓰던 방법들과 어떻게 연결되나

NVC(비폭력대화)의 '관찰-감정-욕구-요청' 4단계는 재구성의 구체적 실행 형태로 읽을 수 있다. 평가적 언어를 관찰 언어로 바꾸고, 귀책 중심의 이슈 명명을 욕구 중심으로 전환하는 NVC의 동작이 Putnam과 Holmer가 말하는 이슈 재구성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당신은 왜 항상 이렇게 하냐"에서 "나는 이번에 이런 것이 필요했다"로 바꾸는 것 — 이게 이슈 명명 단계를 귀책이 아닌 욕구로 재설정하는 동작이다.

Heron의 6차원 개입 프레임워크에서 '촉매적(catalytic)' 개입도 여기 겹친다. 재구성이 이슈의 의미 틀을 교체하는 전략이라면, 촉매적 개입은 그 전략을 실행하는 대화 행동 레퍼토리로 이해할 수 있다. 퍼실리테이터가 "지금 이 상황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묻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질문이 아니라 프레임 전환을 초대하는 개입이다.

서클 대화에서도 같은 원리가 작동한다. 서클의 토킹피스 규칙은 발언권을 구조적으로 분산시키는 동시에, 특정 이슈가 한 사람의 귀책 언어로 고착되는 것을 늦추는 효과를 낸다. 재구성 이론으로 보면, 서클의 구조 자체가 이슈 명명 단계에서 개입하는 설계라고 볼 수 있다.

현장에서 이렇게 ...

학교 사례: 학년 말 생활지도 평가 회의에서 "이 학생은 왜 이렇게 됐냐?"는 귀책 중심의 명명이 반복될 때, 퍼실리테이터가 "이 학생이 이 공간에서 필요로 했던 게 무엇이었을까요?"로 질문을 전환한다. 같은 사안이지만, 이후 대화는 책임 추궁이 아닌 필요 탐색으로 이동한다.

직장 사례: 프로젝트 회고 자리에서 "이건 OO 팀이 데드라인을 안 지킨 거잖아요?"가 나왔을 때, "이번 프로젝트에서 각 팀이 예상보다 시간이 더 필요했던 지점이 어디였는지 짚어볼 수 있을까요?"로 묻는다. 귀책에서 구조 탐색으로 이슈를 재명명하는 동작이다. 이 원리는 지역사회 주민 협의나 비영리 조직 내 갈등 조정 자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두 경우 모두 퍼실리테이터가 '아무 말도 안 한' 게 아니다. 언어 선택으로 프레임 형성에 개입한 것이다.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다음 회의에서 누군가 '누가 잘못했냐'는 방향의 질문을 꺼내면, 바로 반응하지 말고 "이 상황에서 우리가 놓친 게 무엇이었을까요?"로 이슈를 재명명해 본다.
갈등 상황에서 자신이 쓰는 언어를 메모해 두고, '관찰 언어'와 '귀책 언어'로 구분해 본다. 귀책 언어가 많은 지점이 재구성 개입의 우선 후보다.
퍼실리테이터로 진행할 때, 회의 초반에 이슈를 어떻게 명명할지 미리 설계한다. 첫 질문 한 문장이 이후 프레임 전체를 잡는다.

같은 사안도 어떻게 명명하느냐가 이후 대화의 방향을 결정한다 — 이것이 재구성이 단순한 화법 기술이 아닌 이유다.


이 글은 Linda L. Putnam과 Majia Holmer(1992)의 "Framing, Reframing, and Issue Development"(Communication and Negotiation, Sage Annual Reviews of Communication Research, Vol. 20, pp. 128–155, Ed. L. L. Putnam & M. E. Roloff, Newbury Park, CA: SAGE)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