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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실리테이션&디자인씽킹

워크숍을 '활동 묶음'으로 짜면 왜 끝나고 나서 아무것도 안 남을까

by iucenter 2026. 7. 17.

워크숍을 '활동 묶음'으로 짜면 왜 끝나고 나서 아무것도 안 남을까

학교 연수를 기획하는 장학사라면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오전엔 강의, 오후엔 모둠 토의, 마지막엔 결과물 발표. 빈칸 없이 꽉 찬 프로그램표를 완성했는데, 정작 3주 뒤 교사들에게 "그때 뭘 배웠나요?"라고 물으면 침묵이 온다.

비영리 단체 팀장도 다르지 않다. 신규 활동가 온보딩 워크숍을 준비하면서 아이스브레이킹→강점카드→사례나눔→서약서 작성을 차례로 쌓는다. 당일 에너지는 넘쳤다. 그런데 한 달 뒤 현장에서 그 활동가가 실제로 달라졌는가를 묻는 순간, 설계자는 말문이 막힌다.

두 사례의 공통 문제는 하나다. "뭘 할 것인가"를 먼저 정하고, "왜 하는가"는 나중에 붙였다.

역방향으로 생각하면 무엇이 달라지나

Wiggins & McTighe(2005)는 이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교육과정 설계 프레임워크 UbD(Understanding by Design)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활동·교재·방법을 먼저 정하는 습관을 뒤집어, "학습자가 최종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어야 하는가"에서 출발해 거꾸로 설계를 전개하라는 것이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3단계는 이렇다.

  1. Stage 1은 원하는 결과를 확정한다.
    이 워크숍이 끝난 뒤 참가자가 반드시 할 수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쓴다. 가령, "갈등 해결 방법을 배운다"는 목표가 아니라 "처음 만난 팀 구성원과의 의견 충돌 상황에 적용할 수 있다"는 식으로 전이(transfer) 가능한 언어로 적어야 한다. 단순 내용 커버리지와 진짜 이해를 여기서 갈라놓는다.
  2. Stage 2는 이해했다는 증거를 결정한다.
    무엇을 관찰할 수 있을 때 참가자가 이해했다고 볼 것인가? 산출물인가, 발화인가, 행동인가? 이 질문을 활동 설계 전에 해결하지 않으면, 나중에 평가 없는 활동만 남는다. (원저는 K-16 정규 교육과정을 주 대상)
  3. Stage 3은 그제야 활동과 순서를 설계한다.
    Stage 1·2가 완료된 뒤에야 "어떤 활동이 그 증거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아무리 흥미로운 활동도 목적 없는 이벤트가 된다.

저자들은 설계자가 콘텐츠 우선순위를 정할 때 동심원 구조를 쓴다. 바깥층은 알면 좋은 것, 중간층은 중요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핵심층은 지속적 이해(Enduring Understanding)—오래 남고 다른 맥락에 전이되는 것이다. 워크숍 설계자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바깥 두 층을 채우느라 핵심층을 설계에서 빠뜨리는 것이다.

이해했다는 증거를 어떻게 — 6가지 이해 척도

Stage 2를 실제로 운영하려면 "이해했다"는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Wiggins & McTighe(2005)는 이해를 6가지로 나눠 본다.

  • 척도 1 - 설명할 수 있는가?
  • 척도 2 -  해석할 수 있는가?
  • 척도 3 -  새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
  • 척도 4 -  다른 관점을 취할 수 있는가
  • 척도 5 -  타인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가
  • 척도 6 -  자신의 이해 한계를 인식하는가.

한 번의 발표나 소감 한 줄로 이해를 판정하는 것을 이 모델은 경계한다. 다만 여섯 면 모두를 워크숍에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부담이 크다. 맥락에 따라 어떤 면을 우선할지 미리 정해두지 않으면, 6가지 척도는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전락한다.

이미 쓰고 있는 도구들과 어떻게 연결되나

역방향 설계는 현장에서 이미 익숙한 도구들과 구조적으로 맞닿아 있다. 디자인씽킹을 워크숍에 사용하고 있다면 이미 역방향 설계를 하고 있다. 디자인씽킹의 공감-정의 단계가 UbD의 Stage 1, 즉 "원하는 결과 확정"과 기능적으로 같다. 두 모델 모두 활동 나열보다 문제 정의를 먼저 한다는 설계 철학을 공유한다.

Fact-Impact-Invitation 피드백 루틴을 쓴다면, Stage 2의 정신과 닿아 있다. 관찰 가능한 사실(Fact)에서 출발하는 피드백 구조는 이해의 척도를 관찰 가능한 행동으로 보겠다는 UbD Stage 2의 방식과 같다.

퍼실리테이션에서 참가자의 성장을 염두에 두고 설계할 때도 이 순서는 유효하다. "이 프로그램 이후 청소년이 어떤 새로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먼저 써야, 그다음 세션 구성이 목적을 가진다. 스캐폴딩 설계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위한 발판인지를 먼저 확정해야, 어느 시점에 지원을 걷어낼지 판단할 수 있다.

현장에서 이렇게 ...

  • 학교 교원 연수 설계 맥락: 연수 기획 초반에 "이 연수로 교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고 강사와 일정부터 잡는 경우가 많다. 역방향으로 접근하면 순서가 바뀐다. 먼저 "이 연수 2주 뒤, 교사가 수업에서 실제로 다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먼저 반영한다. 그것이 없으면 강사 섭외와 프로그램 설계를 멈춘다. Stage 2는 스폰서 인터뷰나 수업 관찰 체크리스트 같은 대리 지표로 운영해볼 수 있다.
  • 비영리 신규 활동가 온보딩 맥락: "활동가가 6개월 뒤 현장에서 처음 만나는 갈등 상황에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가"를 전이 목표로 먼저 정한다. 그 척도로 "가상 사례 시뮬레이션에서 팀원에게 자신의 판단 근거를 설명할 수 있는가"를 관찰 기준으로 삼는다. 이 두 문장이 완성된 다음에야 온보딩 활동 목록을 만든다. 이렇게 하면 아이스브레이킹이 전이 목표와 연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즉시 드러나고, 워크숍 설계자는 다른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지금 바로 해볼 것

가장 최근에 설계한 워크숍이나 회의의 프로그램표를 꺼낸다. "이 시간이 끝난 뒤 참가자가 새로운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한 문장으로 써본다. 쓰기 어렵다면 설계가 역방향이 아니라 순방향이었다는 신호다.
다음 워크숍을 기획할 때 활동 목록을 작성하기 전에, "무엇으로 참여자가 이해했다는 것을 확인할 것인가"를 팀과 먼저 합의한다. 산출물인지, 발화인지, 사후 행동인지를 하나만 골라도 충분하다.
기존 프로그램 목표에서 "을 배운다","을 이해한다"는 표현을 모두 찾아 "~한 상황에서 ~을 할 수 있다"는 전이 언어로 다시 쓴다. 이 원리는 직장 회의 설계나 지역사회 주민 참여 프로그램 기획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를 먼저 정하면 나머지가 따라온다 — 문제는 우리가 늘 순서를 거꾸로 시작해왔다는 것이다.


이 글은 Wiggins & McTighe(2005)의 저작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원 저작은 Grant Wiggins와 Jay McTighe가 쓴 Understanding by Design (Expanded 2nd Edition)(Association for Supervision and Curriculum Development, ASCD, 2005)으로, ERIC에 ED509029로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