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문제가 뭔가요"를 멈추면 무슨 일이 생기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장면입니다.
오후 4시 10분, 교무회의가 시작되었다. 안건은 "학생 수업 태도 개선 방안"이었다. 부장 교사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올해 들어 수업 집중도가 많이 떨어졌습니다. 문제가 뭐라고 보세요?" 2초 뒤 한 교사가 "핸드폰 때문 아닌가요"라고 꺼냈다. 또 다른 교사가 "학부모 협조가 안 됩니다"라고 덧붙였다. 교감이 "결국 가정 환경이죠"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6분 동안 발언은 이어졌지만 말의 방향은 하나였다. 무엇이 나쁜가, 누가 문제인가. 맨 뒷자리 교사는 한 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회의는 32분 만에 끝났다. 결론 칸에는 "가정 연계 강화, 핸드폰 지도 철저"가 적혔다.
다음 달 같은 안건이 같은 순서로 돌아왔다.

왜 회의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가
이 장면에서 문제는 교사들의 의지나 역량이 아니다. 질문이 대화의 방향을 미리 결정했다. "문제가 뭔가요"라는 첫 질문은 집단의 주의를 결핍과 원인 추적으로 고정한다. 한 사람이 부정적 프레임을 열면 다음 발언자는 그 맥락 안에서 말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더 안전하다. 반박이나 다른 관점은 "현실을 모른다"는 신호로 읽힐 위험이 있다.
구조도 작동한다. 교감이 먼저 동조 신호를 보낸 순간, 위계적 맥락에서 반대 방향의 발언은 비용이 올라간다. 뒷자리 교사가 침묵한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합리적 계산일 수 있다.
결핍 중심 접근의 반복성은 여기서 생긴다. 같은 질문이 같은 종류의 답을 불러오고, 같은 답은 같은 종류의 대책을 낳는다. 대책이 실행되지 않으면 다시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탐구가 이미 개입이다
Cooperrider와 Srivastva(1987)는 Appreciative Inquiry(AI, 감사적 탐구)에서 핵심 전제 하나를 제시한다. 탐구(inquiry) 자체가 이미 변화라는 것이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가 조직이 주의를 기울이는 방향을 결정하고, 그 방향이 집단의 미래를 형성한다.
이 프레임에서 중요한 개념이 Positive Core다. 조직이 최고 상태일 때 나타났던 강점, 역량, 성공 경험, 가치의 집합이다. AI는 이것을 발굴하는 데서 탐구를 시작한다. 결핍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살아 있는 것을 증폭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설계한다.
여기서 한 가지 한계를 짚을 필요가 있다. AI는 서구, 특히 미국의 조직 맥락에서 개발된 프레임워크다. 위계와 집단주의 문화가 강한 조직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명시적 긍정 질문 방식이 오히려 "억지로 좋게 말해야 하는 분위기"로 읽힐 수 있다. 익명성 보장이나 발언권 순서 설계 같은 조정 없이 도입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한다.
또 하나 주의할 것이 있다. AI를 맹목적 긍정주의(toxic positivity)와 혼동하면 안 된다. 후속 연구자 Bushe 등은 AI의 긍정적 효과가 진정한 탐구에서 비롯될 때만 작동한다고 경고한다. "무조건 좋은 점만 말하자"는 분위기를 강요하는 것은 AI가 아니다.
질문 하나를 바꾸면
바꾸기 전
- "올해 수업 태도 문제가 심각한데, 원인이 뭐라고 보세요?"
→ 대화는 문제의 목록을 쌓는다. 발언은 비슷한 프레임 안에서 반복된다. 뒷자리 교사는 침묵한다.
바꾼 후
- "지난 한 학기 중에, 수업이 살아있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그때 무엇이 달랐나요?"
→ 교사들은 스스로 경험을 꺼낸다. 발언 내용이 달라진다. 수업에서 사용한 구체적 방법, 그날 학생들의 반응, 교사 자신이 뭔가 다르게 했던 행동이 나온다. 그 안에 이미 해결의 단서가 들어 있다.
이 전환의 핵심은 교사를 문제의 목격자가 아니라 성공 경험의 보유자로 위치시키는 데 있다.
당장 쓸 수 있는 절차
다음 주 교무회의나 수업 나눔 협의회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순서다.
1단계 — 도입 질문 교체
회의 시작에서 "문제가 뭔가요" 대신 아래 질문 중 하나를 쓴다.
"최근 한 달 안에, 이 학교에서 무언가 잘 됐다고 느낀 장면이 있으셨나요? 짧게라도 꺼내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가장 잘 작동하고 있는 것 하나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2단계 — 짝 대화로 Positive Core 수집
전체 발언 전에 2인 1조로 3분간 나눈다. 개인이 직접 말하기 어려운 맥락에서 짝대화는 위계 압력을 낮춘다. 이후 짝이 "우리가 나눈 것 중 하나"를 전체에 공유한다. 발언 주체가 개인에서 짝으로 옮겨가면서 발언 비용이 줄어든다.
3단계 — "그걸 더 자주 만들려면"으로 전환
Positive Core가 충분히 모이면 질문을 이렇게 옮긴다.
"지금 나온 장면들이 더 자주 일어나려면, 우리가 무엇을 더 하면 될까요? 또는 무엇을 그만하면 될까요?"
이 질문은 결핍을 채우는 방향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을 증폭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연다.
이 방법을 쓰면 안 되는 경우
다음 상황에서는 이 접근이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첫째, 긴급한 갈등이나 사건이 있을 때. 교사 간 명시적 갈등, 학교 폭력 사건 대응, 민원 처리 등 즉각적 문제 해결이 필요한 자리에서 "잘 됐던 순간"을 먼저 묻는 것은 현실 회피로 읽힌다. 이 경우엔 먼저 사실 확인과 감정 수용이 우선이다.
둘째, 집단이 충분히 안전하지 않을 때. 관리자가 평가권을 쥐고 있고 교사들이 "좋은 말만 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는 구조에서 긍정 질문은 오히려 억압이 된다. 질문 도입 전에 익명 응답 채널(포스트잇, 온라인 패들렛)을 먼저 여는 것이 낫다.
셋째, 한두 번으로 끝낼 계획이라면. AI는 단일 회의 기법이 아니다. 한 번 긍정 질문을 던지고 다음 회의에 다시 "문제가 뭐냐"로 돌아가면, 교사들은 이것을 형식적인 절차로 학습한다. 최소 3회 이상 일관되게 적용해야 대화 문화 자체가 조금씩 움직인다.
이 글은 David L. Cooperrider와 Suresh Srivastva가 1987년 Research in Organizational Change and Development(Vol. 1, JAI Press)에 발표한 Appreciative Inquiry in Organizational Life를 개념적 렌즈로 삼아 작성했다. 이 논문은 자체 실증 데이터를 수집하지 않은 이론 논문으로, Cooperrider와 Srivastva는 결핍 중심 조직과학에 대한 대안으로 감사적 탐구의 원칙을 제안한다. AI의 효과성에 대한 경험적 검증과 위계 조직 맥락에서의 적용 가능성은 별도의 실증 연구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떠먹는 FT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팀을 나누는 순간 편견이 시작된다 — 집단 범주화 (0) | 2026.11.02 |
|---|---|
| 참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0) | 2026.10.30 |
| 사회적 촉진·억제와 활동 유형 설계 — Zajonc 드라이브 이론 (0) | 2026.10.28 |
| 회의실 안의 힘 — 레빈 장 이론 (B = f(P, E)) (0) | 2026.10.26 |
| 점 투표, 왜 먼저 붙인 사람이 이기는가 — NSI/ISI 이중경로와 익명성 설계 (0) | 2026.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