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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먹는 FT 공부

참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by iucenter 2026. 10. 30.

조직심리학이 설명하는 퍼실리테이션

참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는데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까 — SDT와 SCARF로 읽는 동기의 질

지역 주민협의회가 퍼실리테이터를 불렀다.(이해를 돕기 위해 구성한 가상의 장면)

구청 예산으로 운영되는 동네배움터였다. 주민 학습 모임을 직접 기획하고 운영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올해 목표였다. 운영진은 10명이었고, 대부분 3년 이상 같이 활동해온 관계였다. 담당 코디네이터는 "의욕이 없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움직이질 않는다"고 설명했다. 분기 한 번 열리는 운영 회의에서 안건을 올리면 다들 "좋아요", "필요하죠"라고 했다. 그런데 다음 회의 때 돌아보면 실행된 것이 거의 없었다. 코디네이터는 "동기가 없는 건지, 역량이 없는 건지, 아니면 제가 잘못 전달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퍼실리테이터는 회의 설계를 맡았다. 한 회기가 아니라 세 번의 연속 워크숍이었다. 목표는 주민 스스로 다음 학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역할을 나누는 것이었다.

처음 세운 가설

퍼실리테이터는 문제를 '역할 불명확'으로 읽었다.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르니 실행이 없다는 것이었다. 회의 구조가 안건 보고 중심이어서, 운영진이 결정자가 아니라 청중처럼 앉아 있다는 점도 문제로 보였다. 그래서 워크숍을 설계할 때 역할 배분 활동을 중심에 뒀다. 관심 영역별로 소그룹을 구성하고, 각 그룹이 프로그램 초안을 직접 만들어 발표하게 했다. 참여 구조를 명확히 하면 실행이 따라올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선택한 개입

1회기는 아이스브레이킹과 관심사 매핑으로 시작했다. 참여자들이 포스트잇에 "내가 이 모임에서 하고 싶은 것"을 썼다. 2회기는 소그룹별 프로그램 초안 설계였다. 각 그룹에 기획 양식을 나눠주고 발표까지 진행했다. 3회기는 역할 배분과 실행 계획 수립이었다.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할지 구체적으로 적게 했다.

방법은 깔끔했다. 활동 시간에 참여자들은 열심히 움직였다. 포스트잇도 붙였고, 발표도 했고, 역할표도 완성됐다.

참여자의 반응

워크숍 중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소그룹에서 웃음이 나왔고, 발표 시간에 박수도 있었다. 역할표를 작성할 때 서로 이름을 쓰자고 권유하는 장면도 있었다. 3회기가 끝날 때 코디네이터는 "오늘 정말 많이 나온 것 같다"고 했다.

한 달 뒤, 코디네이터가 연락했다. 역할표에 이름을 적었던 사람 중 실제로 움직인 사람은 두 명이었다. 나머지는 "바빠서", "다음에", "연락이 없었다"는 이유였다. 프로그램 초안은 파일로 저장됐지만 후속 논의가 없었다.

예상과 달랐던 점

활동은 되었는데 실행이 따라오지 않았다.

처음 퍼실리테이터의 가설은 '구조가 명확하면 움직인다'였다. 하지만 역할표가 있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퍼실리테이터는 사후에 이 장면을 다시 들여다봤다.

워크숍 중 참여자들이 가장 많이 말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포스트잇을 쓸 때가 아니었다. 발표 직후 다른 그룹의 아이디어에 반응할 때였다. "그거 우리 동네 어르신들한테 딱 맞겠는데", "저는 그 주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어요"라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그 대화는 진행 흐름 안에 없었다. 퍼실리테이터가 "좋습니다, 다음으로"라고 넘겼다.

역할표를 작성할 때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한 참여자가 "이거 진짜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억지로가 아니라"라고 했다. 옆 사람이 웃으면서 "맞아요, 그냥 하라니까 하는 것보다 낫죠"라고 받았다. 그 말이 지나갔다. 퍼실리테이터는 그때 시간 배분을 계산하고 있었다.

실행이 일어난 두 명은 모두 워크숍 중 "내가 이걸 왜 하고 싶은지"를 말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우연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한다면 바꿀 것

역할표를 한 회기 뒤로 미룰 것이다.

그전에 한 가지 질문을 더 깊이 다뤘어야 했다. "이 활동이 나에게 왜 의미 있는가." 발표 직후 자연스럽게 나왔던 반응들, "그거 우리 동네에 맞겠다", "저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다"는 말들—그 흐름을 잘랐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아깝다.

또 하나는 회의 구조 자체다. 코디네이터가 안건을 올리고 운영진이 수렴하는 방식은 워크숍 이전에도 이후에도 그대로였다. 워크숍 안에서 참여 구조를 아무리 바꿔도, 이후 일상 회의에서 다시 청중 자리로 돌아가면 실행 에너지가 유지되기 어렵다. 설계 범위를 워크숍 안에 가두지 말았어야 했다.

SDT와 SCARF로 읽는 동기의 질

이론으로 해석하기

이 장면을 설명하는 데 두 개의 렌즈가 유용하다.

첫 번째는 Ryan과 Deci(2000)가 제시한 자기결정이론(SDT)이다. SDT는 인간의 동기를 '얼마나 많이'가 아니라 '어떤 유형으로' 움직이는가로 구분한다. 핵심은 세 가지 심리 욕구다. 자율성—내가 선택했다는 감각, 유능감—해낼 수 있다는 감각, 관계성—이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SDT는 이 세 욕구가 충족될 때 동기가 외적 조절(시키니까 한다)에서 내면화(내가 하고 싶어서 한다)로 이동한다고 제안한다.

위 사례에서 실행이 일어난 참여자들은 '내가 왜 하고 싶은지'를 말로 꺼낸 사람이었다. SDT 언어로 읽으면 자율성 욕구가 언어화된 순간이다. 역할표는 구조를 줬지만, 그 구조 안에서 자율성 욕구가 충족되었는지는 다른 질문이다.

두 번째 렌즈는 Rock(2008)의 SCARF 모델이다. SCARF는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뇌가 위협 또는 보상으로 반응하는 다섯 영역을 제안한다. 지위(Status), 확실성(Certainty), 자율성(Autonomy), 관계성(Relatedness), 공정성(Fairness)이다. 단, SCARF는 신경과학 개념을 조직 행동에 응용한 실용 프레임워크다. 직접적 신경영상 실증 근거보다 개념적 논거에 기반하므로, 이 모델의 주장도 방향성으로 읽는 것이 적절하다.

워크숍에서 참여자들이 가장 조용해지는 순간은 어디였을까. 발표 후 피드백을 받는 장면이었다. 코디네이터가 "좋은데, 여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했을 때, 발표자가 잠시 멈췄다. SCARF 언어로 읽으면 지위 위협이 작동하는 순간이다. 역할표를 쓸 때 '억지로가 아니라'라는 말이 나온 것도, 그 자리가 선택의 자율성이 보장된다는 확신이 불충분했음을 보여준다.

두 이론을 함께 쓰면 이렇게 읽힌다. SCARF는 위협이 제거된 상태인지를 묻는다. SDT는 그 상태에서 어떤 유형의 동기가 작동하는지를 묻는다. 위협이 줄어든다고 자동으로 내면화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SCARF가 '안전한가'의 언어를 제공하고, SDT가 '진짜로 하고 싶은가'의 언어를 제공한다. 퍼실리테이터가 설계할 수 있는 지점은 두 층위 모두다.

단, 이 두 이론의 개념 매핑—예를 들어 SCARF의 지위 차원이 SDT의 유능감과 교차한다거나, SCARF의 확실성이 SDT 욕구 충족의 선행 조건이 된다는 추론—은 원저자들이 직접 검증한 것이 아니다. 이 노트가 제안하는 이론적 추론이다. 실증 연구로 뒷받침되기 전까지 '개념적 유추'로 다루는 것이 정확하다.


적용하면 안 되는 경우

이 이중 렌즈가 효과를 내기 어려운 조건이 있다.

참여자들이 처음부터 외적 의무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다. 구청 위탁 사업의 보고를 위해 운영위원 명부에 이름을 올린 구조라면, 자율성 욕구 자체를 자극하기 전에 그 구조가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내면화는 선택 경험이 축적될 때 일어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조에서 SDT 기법만 삽입하면 "또 형식적인 거 하네"로 읽힐 수 있다.

또한 관계 갈등이 수면 아래에 있을 때다. SCARF의 공정성 차원이 이미 훼손된 상태—예를 들어 특정 구성원이 항상 일을 떠안아 왔다는 누적 감정이 있는 경우—에서는 역할 배분 활동이 갈등을 건드리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이때는 역할 설계 전에 감정 표현을 위한 공간이 먼저 필요하다.


바로 쓸 수 있는 질문과 절차

워크숍 시작 전 또는 소그룹 활동 도입 시:
"오늘 여기서 다루는 주제 중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왜 그게 마음에 걸리는지도 함께 얘기해주세요."

이 질문은 자율성 욕구를 언어화하도록 돕는다. '좋아요'와 '내가 하고 싶어요'는 다르다. 그 차이를 말로 드러낼 수 있어야 실행 에너지가 달라진다.

역할 배분 직전:
"지금 자기 이름을 쓰려는 자리, 누군가가 부탁해서 쓰는 건가요, 아니면 본인이 해보고 싶어서 쓰는 건가요? 솔직하게 말해줘도 됩니다."

이 질문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역할표가 완성되는 것보다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나오는 것이 낫다. SCARF의 자율성 위협을 낮추면서 동시에 내면화 여부를 점검하는 질문이다.

3회기 연속 워크숍을 설계할 때 절차:
1회기: 관심사 매핑 후, 소그룹별로 "왜 이게 나한테 의미 있는지"를 3분간 대화한다. 이 대화를 진행자가 끊지 않고 듣는다.
2회기: 프로그램 초안 설계 전, 발표 후 피드백은 '질문만 허용' 규칙으로 운영한다. 평가 없는 질문이 지위 위협을 낮춘다.
3회기: 역할표 작성 전, "억지로가 아니라 진짜로 하고 싶은 것만 적자"는 전제를 명시적으로 말한다.


이 글은 Richard M. Ryan과 Edward L. Deci의 "Self-Determination Theory and the Facilitation of Intrinsic Motivation, Social Development, and Well-Being"(American Psychologist, 2000)을 주요 이론 근거로 삼는다. 이 논문은 수십 년간의 실험·현장 연구를 종합한 이론 통합 논문으로, 원저자들이 직접 수집한 신규 데이터 기반의 실증 분석은 아니다. SDT와 SCARF의 개념적 매핑은 이 노트가 제안하는 이론적 추론이며, 두 이론을 통합해 퍼실리테이션 설계에 적용한 효과를 직접 검증한 동료 심사 연구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Rock(2008)의 SCARF 모델 역시 조직 행동 응용 프레임워크로, 신경영상 실증 근거보다 개념적 논거에 기반한다는 점을 함께 밝혀둔다.